둥굴레차는 찻잎이 아닌데 왜 ‘차’라고 부를까?
녹차도 홍차도 아닌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둥굴레‘차’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마셔서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음료가 있다. 바로 둥굴레차다.
식당에 가면 물 대신 구수한 둥굴레차가 나오기도 하고, 집에서도 보리차처럼 큰 주전자에 끓여 놓고 마시곤 한다. 나 역시 둥굴레차를 그냥 여러 종류의 차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녹차와 홍차에 대해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녹차와 홍차, 우롱차는 모두 기본적으로 같은 차나무의 잎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둥굴레차는? 둥굴레에도 찻잎이 있는 건가?”
평소에는 너무 당연해서 궁금하지 않았는데 한번 의문이 생기니 오히려 이상했다. 보리차, 옥수수차, 결명자차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이름 끝에 ‘차’가 붙어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찻잎으로 만드는 음료는 아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 차이고, 찻잎이 들어가지 않은 둥굴레차는 왜 차라고 부르는 걸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 궁금증을 풀려면 먼저 차라는 말을 조금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식물학적이고 전문적인 의미에서 차는 차나무의 잎과 싹을 가공해 만든 것을 말한다. 녹차, 홍차, 백차, 우롱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름과 색깔, 향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녹차와 홍차도 출발점은 차나무라는 사실이다. 찻잎을 어떻게 수확하고 산화시키며 가공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차가 만들어진다.
반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차’라는 말의 범위는 훨씬 넓다.
식물의 잎이나 꽃, 열매, 씨앗, 뿌리 등을 뜨거운 물에 우리거나 끓여 마시는 음료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차라고 부른다.
보리차, 옥수수차, 유자차, 생강차, 결명자차 등이 대표적이다.
둥굴레차 역시 두 번째 의미에 해당한다.
즉, 엄밀하게 말하면 녹차나 홍차와 같은 종류의 차는 아니지만 우리 생활에서는 뜨거운 물로 우려내거나 끓여 마시는 음료라는 의미에서 ‘차’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도 비슷한 구분이 있다. 차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은 tea라고 하고, 허브나 꽃 등을 우린 음료는 herbal tea 또는 infusion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둥굴레차는 무엇으로 만드는 걸까?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은 부분이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 둥굴레의 잎을 말려 차로 만드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둥굴레차는 일반적으로 둥굴레의 땅속줄기인 근경을 말리고 덖거나 볶아 만든다. 우리가 흔히 ‘둥굴레 뿌리’라고 부르는 부분과 관련되어 있지만 식물학적으로는 땅속줄기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알고 나니 둥굴레차 특유의 맛도 조금 이해됐다.
녹차처럼 풀 향이 강하지 않고, 오히려 곡물을 볶았을 때처럼 구수하고 은근하게 단맛이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다.
잘 말린 둥굴레를 볶으면 고소한 향이 생기고 이것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거나 끓이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갈색빛 둥굴레차가 된다.
그래서 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도 비교적 부담이 적다.
식당에서 마시던 그 물이 둥굴레차였던 기억
둥굴레차를 생각하면 나는 고급스러운 찻집보다 오래된 식당의 물병이 먼저 떠오른다.
어릴 때 가족과 식당에 가면 투명한 물병 안에 그냥 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진한 갈색 물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여름에는 차갑게 식혀서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주전자에 담겨 나오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보리차인지 둥굴레차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그냥 ‘집에서 먹는 물과 맛이 조금 다르다’ 정도였다.
특히 둥굴레차는 처음 입에 넣었을 때보다 삼키고 난 뒤에 남는 구수한 향이 좋았다. 녹차처럼 떫은맛이 강하지 않아서 밥을 먹으면서 물처럼 계속 마시기도 했다.
성인이 된 뒤 어느 식당에서 비슷한 맛의 물이 나와 직원에게 “이거 보리차인가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둥굴레차예요.”
그 말을 듣고 다시 마셔보니 보리차와 미묘하게 달랐다.
보리차가 볶은 곡물의 고소함이 먼저 느껴진다면 내가 마신 둥굴레차에서는 조금 더 부드럽고 은근한 단맛 같은 것이 남았다. 평소에는 그냥 ‘구수한 물’이라고 생각했던 맛이 이름을 알고 나니 다르게 느껴졌다.
그 후부터 식당에서 갈색빛 물이 나오면 괜히 한 번 향을 맡아보게 된다.
‘이건 보리일까, 둥굴레일까?’
별것 아닌 습관인데 차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긴 작은 재미 중 하나다.
보리차와 둥굴레차는 같은 종류일까?
둘은 맛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원료는 전혀 다르다.
보리차는 이름 그대로 보리를 볶아 물에 끓이거나 우려 만든다. 반면 둥굴레차는 둥굴레의 땅속줄기를 가공해서 만든다.
공통점은 둘 다 차나무의 찻잎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두 음료 모두 오랫동안 일상적인 ‘차’의 범주 안에서 불려왔다.
특히 보리차나 둥굴레차는 격식을 차리고 작은 찻잔에 조금씩 마시는 음료라기보다 물처럼 편하게 마시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 점이 녹차나 홍차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유자차도 진짜 차가 아닐까?
둥굴레차를 알아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음료에도 같은 의문이 생긴다.
유자차에는 찻잎이 없다.
생강차에도 찻잎이 없다.
대추차와 모과차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이름들을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말에서 ‘차’는 이미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음료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성 재료를 물에 우리거나 끓여 향과 맛을 즐기는 음료를 폭넓게 가리키는 생활 속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식물학적 분류와 음식문화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재료를 ‘차’라는 한 단어 안에 담아왔는지가 보인다.
직접 끓여보니 티백과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는 간편해서 티백 형태의 둥굴레차를 자주 이용했는데, 어느 날 마트에서 볶은 둥굴레가 눈에 들어와 직접 끓여본 적이 있다.
주전자에 물을 붓고 둥굴레를 넣었을 때만 해도 특별한 향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물이 끓기 시작하자 조금씩 구수한 냄새가 올라왔다.
커피처럼 강한 볶은 향도 아니고 보리차와도 조금 달랐다. 은근해서 처음에는 잘 모르겠는데 한동안 끓이고 나니 집 안에 따뜻한 냄새가 퍼졌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식힌 다음이었다.
따뜻할 때는 고소한 향이 먼저 느껴졌는데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갑게 마셔보니 맛이 훨씬 깔끔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둥굴레차를 단순히 ‘물 대신 마시는 차’라고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온도와 농도에 따라서도 느낌이 꽤 달라지는 하나의 음료였다.
카페의 차보다 주전자 속 둥굴레차가 더 익숙한 이유
차라고 하면 흔히 우아한 찻잔과 찻주전자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차에 관한 기억을 물어보면 조금 다른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
할머니 집 냉장고에 있던 보리차, 식당에서 나온 둥굴레차, 겨울에 마시던 유자차처럼 일상적인 기억들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예쁜 찻잔에 담긴 홍차를 처음 마셨던 순간보다 여름날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둥굴레차 한 잔이 훨씬 오래된 기억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둥굴레차에 ‘차’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차는 식물학적인 원료를 나타내는 말인 동시에 우리 생활에서는 물에 무언가를 우려 천천히 마시는 하나의 방식까지 포함하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이름 하나에도 음식문화가 숨어 있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둥굴레에는 찻잎이 없는데 왜 둥굴레차라고 할까?’
그 답을 찾아보니 차나무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식물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어떤 음료를 차라고 불러왔는지까지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둥굴레차는 녹차나 홍차처럼 차나무의 찻잎으로 만드는 차는 아니다.
둥굴레의 땅속줄기를 말리고 볶아 물에 우리거나 끓여 마시는 음료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차’라는 말은 이미 차나무로 만든 음료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둥굴레차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보리차, 옥수수차, 유자차 같은 이름도 새롭게 보였다.
차를 알아가는 재미는 꼭 비싼 찻잎의 이름을 외우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이름 하나를 붙잡고 ‘왜 이렇게 부를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다음에 둥굴레차를 마시게 된다면 나도 아마 예전처럼 그냥 물처럼 마시지는 않을 것 같다.
잔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향을 맡으면서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찻잎 한 장 들어 있지 않은 이 음료가 오랫동안 우리의 ‘차’가 되어온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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